김 보 민 | Bomin Kim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Solo Exhibition

2018  ‘미세한 틈, 모호한 결‘, ARCE 갤러리 기획초대전, 서울
2017  ‘쉽게 부서지고 흐트러지는 것’, 아트스페이스 루, 서울
2017  ‘아무도 없고 그래서 길었던’, 탐앤탐스블랙 청계광장점, 서울
2017  ‘규정되지 않는 시간, 방치된 일부’, 유나이티드 갤러리, 서울
2017  ‘유약한 존재들’, 아티온, 서울

2016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는 시간들’, 상암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6  ‘열세 개의 시선과 열세 개의 입장’, 갤러리밈 window gallery, 서울
2016  ‘잔상의 잔상(Afterimage of the afterimage)’, 8번가 갤러리, 서울
2016  '파편화된 기억(Fragmented memories)‘ 석사학위 청구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4  '사라진, 살아남은', 유성아트 갤러리, 안양
2014  'Wander-land', 탐앤탐스 건대 탐스커버리, 서울



‌Group Exhibition

2016  ‘ART POCKET’, 640 아트갤러리, 서울
2016  ‘브리즈 아트페어’, 블루스퀘어 네모갤러리, 서울
2016  ‘보여지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키미아트, 서울
2016  ‘은유적 관계’, 청주시립 대청호미술관, 청주
2016  ‘공간의 이면’ 김보민 김호성 2인전, 갤러리 위, 서울
2016  ‘움트다, 봄’, 소피스 갤러리, 서울
2016  ‘Holo : space', 히든엠 갤러리, 서울
2016  ‘조금만 더 가까이’, 장항 문화예술 창작공간, 장항

2015  ‘반복(repetition)‘, 북한남 갤러리, 서울
2016  '나는 무명작가다',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16  'art1 show', space art1, 서울
2015  '2015아시아프', 문화역 서울284, 서울

2014  '서울 아트쇼', 코엑스, 서울
2014  '단원 미술제', 단원 미술관, 서울
2014  'Episode.8 SOLITUDE 김보민, 유아름 2인전', 알파 갤러리, 서울
2014  '2014아시아프', 문화역 서울284, 서울

2013  '김보민, 김도영 2인展', 컬렉터스 키친, 서울
2013  'FOCUS CUBE', SPACE V, 서울
2013  '도展',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3  '2013아시아프', 문화역 서울284, 서울

2012  '작업:실展', 제일 갤러리, 서울
2012  '2012아시아프', 문화역 서울284, 서울



‌Collection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외교통상부
아트스페이스루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젠틀몬스터
(주)피알원
탐앤탐스
호텔에버리치((주)에버리치홀딩스) 외 개인소장


Artist Statement

감정은 소모되는 것임에도 동시에 지속되는 것일까? 어떤 사건으로부터 발생한 감정은 한동안 그 여운이 계속된다. 그 한동안이라는 기간이 그저 잠시 머무르는 것일지, 꽤 오래 남아있을지 예측할 수 없지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빈번하게 감정을 동반한다. 감정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로인한 내면의 변화는 실상 외적인 여러 가지를 변화시킨다.

그동안의 작업 포커스는 기억에서 파생되는 감정에 집중했고 기억과 관련된 감정들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했다. 무의식적인 순간에 끊임없이 떠오르고 머물러있는 부정적 기억과 감정에 대해 자문하는 과정에서 관계의 성질은 - 어떤 형태로든 변하는, 견고하지 못한 것, 깨지기 쉽고 유약한 것 -으로 추려졌다.

사라진 관계와 사라지지 않는 기억 사이에서 충돌하는 감정의 높낮이는 한없이 무기력하게 하거나 때로 파괴적인 면모를 드러나게 한다. 한때 나를 망치는 음울한 기운들이 감당하기엔 넘치도록 버겁게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그 시기에 내가 정의하던 ‘관계’는 부정적인 의미들로 채워졌고 그에 대해 회의적인 상태가 이어지며 스스로가 정해놓은 선과 틀 속에서 대상과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의식하며 부단히도 노력했다. 외면하고 싶은 기억을 뒤로 한 채 방치했던 감정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 곳곳의 미세한 틈 속으로 잦게 파고든다. 가릴수록 선명해지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인 것이다. 과거 마음의 회복과 안녕을 위해 내면을 정제하려 애쓰고 가다듬는 노력 혹은 보이기 위한 것들 대신 현재는 억지스러운 것들에 하나 둘 힘을 빼려 한다.

여전히 나의 작업은 기억, 감정,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거듭되는 과거의 기억이 시간을 통과할 때 마다 미미하게나마 희미해지고 불투명해지는 것, 그리고 순간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어 긴 기쁨도 긴 슬픔도 없기에 작업을 하는 마음가짐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다. 이전과 같은 언어, 이미지일지라도 조금 덜 무겁고 조금 더 무던해진 지금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모호한 결 속 에서도 흔들림 없이 굳건해지기를.

Art Criticism

우리 삶에 개입하는 것들
김보민 개인전 < 미세한 틈, 모호한 결 >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어떤 개념의 속성을 비교할 때 “결이 다르다”는 표현을 점점 많이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 차원의 분절을 규정하는 것이 결코 명쾌한 것만도 아님을 알게 된 듯하다. 물론 그 ‘결’이라는 개념 역시 무척이나 모호한 것이다. 그것은 유동적이며 이미 확정된 듯한 결이라 하더라도 결코 시각적으로 결론내릴 수 없이 더듬어야 하는 대상이다. 결이 경성인지 연성인지를 가늠하는 것 또한 가변적이어서 그 결의 주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만들어가거나 소유하는 주체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확보하지는 못한다. 다만 인식의 주권에 좀 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간을 지배하는 차원들 사이의 미세한 틈을 스스로 비집고 들어감으로써 관망자와 연루자로서의 두 지위를 이으려 애쓴다. 그 안에서 기억이 부서지고 조작될지언정 그것은 실존의 포기가 아닌 재현으로 남을 것임을 주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 감정, 관계라는 세 가지 요소에 천착해온 김보민 작가는 바로 그 본능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문득 랑시에르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가 “예술과 정치는 불가분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기에 단순한 접근으로는 정치와 주제의 직접적인 공유 없이 개인의 기억을 다루고 있는 김보민 작가의 세계가 그와 상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랑시에르를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인 ‘시간’을 개인의 행위로 치환해볼 때, 무의식으로부터 파생된 기억에 맞서는 작가의 자세는 니체가 말하는 ‘권력 의지’에 주소를 두고 있다. 작가는 ‘긍정’이라는 개념과 그 반대인 ‘부정’이라는 개념이란 우리가 선험적으로 쉽게 받아들인 규정이며, 이를 다시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 밀어내며 재해석하는 과정으로서 실존적 시간이 재편되고 있음을 작업의 과정과 결과에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지금과 이전, 이후를 어떤 ‘허구적 서사’ 속에 연쇄시키는 시간의 보편적 ‘극작법’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작가는 이를 다시 치열하게 탐구하면서 주체적으로 비트는 가공을 함으로써 ‘시간 있는 자들의 시간’, 즉 ‘능동적 인간’이 자신의 행위와 앎을 자신만의 인과적 서사로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삶에 개입하는 것들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재’와 ‘부재’가 혼용된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해냄으로써 ‘다만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시각화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의 작가노트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추론해볼 수 있다.

비자발적 기억으로 인한 심리적 억압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토대로 실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나타내면서 산발적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형식을 차용하여 조형적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삶의 순간을 포착한 일상 속 이미지들을 헤테로토피아적 장소에 놓고 그러한 상징적 표현들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을 살펴보며 현재의 심리 상태에 따라 과거의 기억도 상이하게 읽히고 기억되며 얼마든지 재구성이 일어날 수 있다.

김보민 작가는 평면 안에서 조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조형 개념은 구체적이고 정합성 있는 입체감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에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평면 안의 조형이란 3차원적인 것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2차원 위에 착시된 시각적 장치쯤으로 단정된다는 한계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보민 작가는 처음부터 ‘입체감’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정합성을 해체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정합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거의 다 만들어진 어떤 입체와 소실점의 논리는 끝내 다물어지거나 만나지 않고 기존의 시각을 희롱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그의 그림이 구현해낸 각도와 배치는 일종의 안정성을 준다는 데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속인 것일까.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에게 먼저 묻게 된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 부재하나 의미 있는 것, 존재하나 무의미한 것 >은 이분법을 차용한 질문을 던지며 결과적으로는 존재와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내재하는 이분법을 해체한다. 자고 일어났는데 찜찜한 꿈이 선명하지 않지만 틈을 비집고 나오는 듯한 기억을 그린 < 결말 없는 꿈 >, 10년 전 일이 명징하게 남아 있는 아이러니를 다룬 < 기억나지 않을 어제 >와 같이 김보민 작가는 제목 자체에도 공을 많이 들여왔다. 이는 ‘무제’ 시리즈가 많은 하나의 관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두 경향 중 어느 하나가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이를 혼용하는 작가들 역시 작명에 있어 예외 없이 허용되어야 할 자율성을 증명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할 수 있겠으나 김보민 작가의 주제의식과 어떤 방식이 성격적으로 맞는가를 생각해볼 때에는 당연히 지금의 방식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가는 서정의 추상이 아닌 감정의 구체를 자기주도적인 논법에 따라 전개하고 또한 전시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가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은 보고 있는 자의 정신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장 콕토는 말했다. 이것은 인식의 책임성을 정확히 중간쯤에 걸쳐놓은 오묘한 말이다. 그 책임성은 추궁되어지는 것도, 그렇다고 그리 자율적인 것도 아니다. 작가는 적극적인 제목과 이를 표상하는 상황적 구상을 우리 앞에 던져놓고도 반쯤 여유롭게 자율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원형과 삼각형의 캔버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의도’를 힘주어 보여주지 않고도 아직 어떤 틀 안에 있으면서도 틀이 바뀌는 논리 위의 탈논리를 통해 그의 기하학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간다. 틈과 결의 변주는 잠자던 취향을 건드리고, 가치중립적인 이름들은 긍정과 회의의 화해를 도모한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규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로운 속삭임을 듣는다. 그러나 결코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 그림에서 우리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헤테로토피아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심지어 공간 안에 들어섰을 때 그 자체로 그림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건, 신작 < 벽이된 문 >의 발상처럼 작은 문을 닫고 방치했을 때 커다란 문이 되어 벽처럼 보일 수 있다는 통찰이 그의 세계를 반영하는 전시 공간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상징적으로 말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 역시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플라톤이 ‘상상’의 영역을 ‘추론’과 ‘직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지계가 아닌, 이와 대립되는 가시계 안에 ‘확신’과 함께 배치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한다는 점은 김보민 작가의 작업들이 우리에게 각인되고 기억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항상 넘나들며 사는 우리에게 ‘직관’의 영역을 ‘기억’의 영역에만 매어두지 않고 재차 ‘감정’과 ‘관계’의 틈과 결로 소환하여 결국은 그 스스로도 찜찜함을 조금씩 지워내며 대신 새로운 시각적 개입을 통해 선험적 경험을 ‘상상’의 세계로 재현하고, 상쾌한 듯 시큰하고 완성된 듯 모호하게 병존할 수 없는 두 차원을 한 차원 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상의 시 < 거울 >처럼 말이다.

글/ 배민영 (갤러리서울 대표, 계간 취향관 편집장)